김 경성
Denis Olivier (France)
High Hopes, 2008
나무의 유적
얼마나 더 많은 바람을 품어야 닿을 수 있을까
몸 열어 가지 키우는 나무,
나뭇가지 부러진 곳에 빛의 파문이 일고 말았다
둥근 기억의 무늬가 새겨지고 말았다
기억을 지우는 일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어서
끌고 가야만 하는 것
옹이 진 자리,
남아 있는 흔적으로 물결무늬를 키우고
온몸이 흔들리도록 가지 내밀어
제 몸에 물결무늬를 새겨 넣는
나무의 심장을 뚫고
빛이 들어간다
가지가 뻗어 나갔던
옹이가 있었던
자리의 무늬는, 지나간 시간이 축적된
나무의 유적이다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고
무늬의 틈새로 가지가 터진다, 잎 터진다, 꽃 터진다
제 속에 유적을 품은 저 나무가 뜨겁다
나무가 빚어내는 그늘
에 들어앉은 후 나는 비로소 고요해졌다
Mont In Time, 2008
바람의 발자국
키 큰 느티나무의 몸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바람을 보았다
나뭇잎의 낱장마다 속속들이
소소속 바람이 박히는 소리, 그 소리
나무의 몸속으로 들어가 나이테의 행간을 휘돌아서
쏴 와와와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바람의 신발
한 짝 두 짝 주워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지문처럼 번져 있는 바람의 무늬 손금 닮았다
느티나무의 몸속에 남아있는 바람, 잎 젖혀가며 내게로 와서
발자국을 찍어대고
나는 기왓장 틈 아슬아슬하게 꽃을 피운 씀바귀처럼
절집 마당에 오래 앉아
발자국에 고이는 바람의 말을 읽었다
무언가 간절히 그리워지는 해질 무렵,
몸과 마음을 열어놓으니
몸을 뚫고 들어오는 바람
그대 마음인 듯 따뜻해서
흩어져 있는 바람의 발자국 가만가만 만지며 산길 걸었다
내 몸 스치는 곳마다
숲 떨림의 소리 가득했다
Pablo Casals - Kol Nidrei, 1923 / Max Br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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