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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글 나들이

이 준규 / 하얀 방

by 알려하지마 2010. 5. 8.

 

 

 

 

 

 

Graca Loureiro

 

Once, You, Go, Black.. You Never, Go, Back

 

 

 

 

 

 

화요일이다 수요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월요일일지도 하얀 문이 있는 방에 오래 있었다 창이 있는 방이었는데 창문을 열리지 않았다 창밖으로 버즘나무와 은행나무가 보였고 그 위로 구름이 있는 하늘이 보였다 복도로 가끔 사람 같은 것이 지나갔다 때론 매미 소리가 들리고 때론 눈이 내렸다 가끔 겁먹은 소음이 들려왔다 하얀 문이 있는 하얀 방은 언제든지 나갈 수 있는 하얀 방이었다 언젠가 그는 하얀 방이 있는 하얀 문을 나가기로 결심하며 결심이란 단어는 우습다고 생각하며 그런 생각은 생각이 아니라 뭐랄까 아무튼에 속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동시에 영역 같은 단어는 참 이상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그는 하얀 물을 겁쟁이답게 단호하게 열어젖혔고 문지방을 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끔찍한 흰빛을 느꼈다 다시 하얀 문을 과감히 닫으려다가 누군가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괘 비겁한 생각에 그의 나이에 걸맞은 안색을 지어보려 애쓰며 안색이란 고색창연한 단어를 나는 왜 좋아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는 듯한 흔들리는 표정도 잠시 인간적인 매력도 더하기 위해 지어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 흰빛은 나의 등장을 축하하는 조명이거나 친구들의 깜짝파티일 것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세상에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엄혹한 현실이라는 것을 생각해냈고 동시에 엄혹하다는 단어를 생각할 자격이 있는지 생각했고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를 생각할 위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지만 실소라는 단어를 왜 난데없이 생각했는지 생각했다 그러면서 역시 이 하얀 방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보고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래도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문을 천천히 그리고 힘없이 닫았다 어디선가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고 발가락 너머로 개미와 거미가 사이좋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다음번에는 아무리 무서운 흰빛을 만나더라도 문을 열고 나가 다른 문을 만나리라고 단호히 결심했고 이번 결심은 진짜라고 돌이킬 수 없다고 느꼈다 창밖으로 노란 비가 쏟아지고 있었고 하얀 방은 초록 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사이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물론 궁금하지 않았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노란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커피를 다 마셨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그는 자연스럽게 하얀 문을 열고 나가 물을 끓이고 커피잔에 커피를 넣고 끓인 물을 부은 후 작은 숟가락으로 잘 저으며 나는 왜 숟가락이라는 단어를 사랑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그리고 빨리 하얀 방으로 들어가서 하얀 방을 나오는 장면을 전쟁 전날 밤의 왕의 서재 같은 분위기를 가진 다른 방에 우뚝 서서 검은 창밖의 엉킨 지평을 응시하는 왕의 재떨이 같은 기분으로 상상하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느라고 커피를 조금 흘렸고 조금 흘러 바닥에 흐른 커피를 걸레로 닦았다 닦으며 그는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싶었으나 그 생각은 그에게 금지된 것이었다 그는 다시 문을 열고 하얀 방으로 들어가며 어쩌면 정말로 혁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다시 의자에 앉아 노란 빗방울을 묻히고 있는 버즘나무와 은행나무의 징그러운 모습을 감상하며 심심하니까 울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울었다 눈물엔 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얀 문을 열고 문지방을 지나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서 그는 생각했다 나는

 

 

 

이 준규,  하얀 방

 

 

 

 

 

 

 

 

 

 

 

 

 

 

 

 

 

 


           

 

Ayo - Down on My Kne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