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을
바람에 흩어지는 머릿결과
표정을 알 수 없는 눈
조각처럼 빗어놓은 그에게서
나는 묘한 서글픔을 훔치곤 했다.
겨울로 들어설 무렵
분식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다
지나치는 그와 눈길이 부딪치고
불쑥 들어와 내 앞에 앉으며
그가 말했다. Mihaela Cojocariu
커피 마시러 가요.
어리둥절할 새도 없이
그래 줘….
그 한마디에
거절의 명분도 찾지 못한 채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넓은 찻집 한쪽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In Your Letter, 이 묘한 느낌의 노래
그리고 그의 얼굴에 몰려다니던 묘한 느낌들
그 시니컬했던 조화.
그 후
그와 이렇다할 진전도 없이
간혹 마주치기만 하던 내게
어느 날 그는 나를 불러내
밑도 끝도 없이
넌 아니야….
이 한마디를 하고 사라졌다.
무엇이 아니었는지.
그리고 무슨 관계라, 내가
그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
묻지도 못한, 나는 뭐이며
그리 말할 수 있는 그는, 또 왜인지
일 년쯤 지나도
사라지지 않던 의문에
그를 다시 찾았었다.
왜냐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무슨 의미였느냐고.
그는 묘하게 웃음을 터트렸고.
결혼하자.
뜬금없는 말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을 때
그냥 들어줘….
아무 토도 달지 말고 그냥 들어.
어찌하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들어.
이미 너에게 올인을 했으니까.
들어야 해….
그가 하는 연극만큼이나
멀리 둥둥 떠다니던 언어로
그는 별안간, 몰입
내 시간을 조여왔었다.
그해 겨울.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거나
어떤 이유로도 그는
밤이면
우리 집 대문 앞을 서성거렸고
숨어버린 나를 향해
밤새 눈이 뒤집히도록
내 창을 쏘아 보곤 했다.
어느 날, 새벽
툭 던지고 간 두터운 편지에는
길고 긴 그의 詩가
토해진 각혈처럼
몽실몽실 엉겨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웃었던가.
아니면 슬펐던가.
아련히 뒷걸음질치는 기억.
처음으로 내 사고에
끼어들었던 異性으로
좋았는지 싫었는지도 모르게
그 짧은 단편으로도
무겁기만 했던 기억.
모질고 모질게
늘 시작도 전에, 꺾이던
내 날개의 시작이었는지도.
새삼스러운 가을
내가 아파
비로소
남의 상처를 들여다 본건지도.
사랑은 아팠다.
그것이 교류이든
일방적 직류였건 간에
사.랑.은.여.전.히.아.프.다.
기억의 단편 / In Your Letter, 2005-11-02
Reo Speedwagon - In Your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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