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ger Guetta / Currently Single
사소한 물음에 답함
송 경동
스물여덟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찾아왔다
얘기 말엽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요?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유리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 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이라고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에 함께 하지 않았다
십수 년이 지나 요 근래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내게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으며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 있고
걷어 채인 좌판,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지식에 날을 세우며 떠들던 열정
그들이,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었다
무엇을 하였는가
뿌리가 깊지 않았던 근본이
오히려 약한 풀들을 베어버렸다
민중과 함께하겠다던 정의로움이
그들을 짓밟는 데 사용되었다
눈, 무엇을 보는가
방향성을 잃은 시각은
눈먼 이보다 못한, 칼보다 심한 가학으로
여전히 피를 부르고 있다
인성 없는 지식의 위험성
혁명까지 바라지 않는다
집 앞을 쓸듯 아주 작은 내 반경
거기까지만 바르게 정리하는
최소의 책임
왜 사느냐 묻거든.., 그냥 웃지요. 하던
무게감 없는 손
그 빈손을 갖고 싶다
정 태춘 - 서울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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