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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글 나들이

채 호기 / 나를 지나쳐 다른 편으로

by 알려하지마 2008. 10. 19.

 

 

 

 

 

 

          Eccedonna

 

 

 

 

                              Giancarlo Amici

 

 

 

 

  

 

 

채 호기,  나를 지나쳐 다른 편으로

 

 

 

그날, 저편으로 가는 팽팽한 철로 위에서
네 삶이 무서운 속도로 나를 지나치며
내 귀에다 빠르게 쏟아 부은 말.
그것은 맑은 하늘에 먹장 구름 같은 울음이었니
시야를 지우며 갑자기 쏟아지는 눈보라 같은 비명이었니

 

너를 지나쳐 빠른 속도로 멀어지던 기차는 내가 아니다
이미 내 삶이 아니다
그곳의 몇 개의 객실을 뒤진다 해도
나는 없고, 짧은 순간 너를 바라보던 차창
내 마음이 앉았던 자리는
빈 좌석에 구겨진 시트만이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나를 지나쳐 다른 편으로 가는 네 몸 위에
나는 옮겨 실렸다
열린 창문으로 비어져 나와 펄럭이며 몸부림치는 커튼처럼
너의 호주머니에서 흘러나와 버려질 것 같은 손수건처럼
나는 내달리는 네 삶에 낑겼다

 

내 몸이 완전히 실리기도 전에
네 몸의 문은 닫혀 버렸으니
나는 견딜 수 없이 아프고
너의 고집스럽고 단호한 속도 때문에
내 몸은 네 삶의 바깥에서 아직도 시리게 펄럭인다

Sinapsi   

 

 

 

 

 

 

 

 

 

 

 

 

 

 

 

 

 


           

 

Billie Holiday - I'm A Fool To Wan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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