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默想/기도, 그리고

The Shroud Of Turin (튜린의 수의)

by 알려하지마 2010. 1. 27.

 

 

 

 

 

 

 

The Shroud Of Turin

 

 

 

 

 

 

 

 

 

Part of the First Photograph of the Shroud Showing the Face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 영원히 있나이다

 

 

 

 

Pater noster, qui es in caelis

파테르 노스테르, 퀴 에스 인 챌리스

sanctificetur nomen tuum

상티피체투르 노멘 투움

Adveniat regnum tuum

아드베니아트 레늄 투움

Fiat voluntas tua

피아트 볼룬타스 투아

sicut in caelo et in terra

씨쿠트 인 챌로 에트 인 테라

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

파넴 노스트룸 쿠오티디아눔 다 노비스 호디에

Et dimitte nobis debita nostra

에트 디미테 노비스 데비타 노스트라

sicut et nos dimittimus debitoribus nostris

시쿠트 에트 디미티무스 데비토리부스 노스트리스

Et ne nos inducas in tentationem

에트 네 노스 인두카스 인 텐타치오넴

sed libera nos a malo

세드 리베라 노스 아 말로

Quia tuum est regnum, et potestas, et gloria in saecula

퀴아 투움 에스트 레늄 에트 포테스타스 에트 글로리아 인 새쿨라

Amen

아멘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Amen

인 노미네 파트리스 어트 필리이 에트 스피리투스 쌍티 아멘

 

 

 

 

 

 

 

 

 

 

The First Photograph of the Shroud:

The Image is Revealed More Strongly in the Negative

 

 

 

 

 

 

 

 

 

 

 

 

이탈리아 튜린의 성요한 성당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의 몸을 무덤 속에서 감쌌다고 믿어지는 수의가 보관되어 있다. 아직까지 진품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과학적 연구는 진품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것이 진짜 예수님의 수의라면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엄청난 중요성이 있을 것이다. 


튜린의 수의는 길이 14피트 3인치(약 4미터)에 너비 3피트 9인치(약 1미터)의 아마천 조각이다. 천은 왼쪽 면 전체에 한 줄의 손바느질로 연결되어 있는 3.5인치(약 9센티미터) 너비의 길쭉한 조각천을 제외하면 수직기로 짜인 한 장의 아마천이다. 1532년 화재로 거의 타버릴 뻔했는데 당시에 보관 중이던 은제 상자의 뚜껑이 녹아 천 위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 천 위에 매장을 위해 누워 있는 한 남자의 전신 이미지가 관심인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마추어 사진작가 피아 세군도가 찍은 사진을 애틀랜타 수의 센터의 소장인 알베르트 드리스바크 박사는 이렇게 묘사한다. 

“죽은 남자의 나체를 앞뒤 이중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남자의 머리 위에는 수많은 날카로운 물건에 찔렸음을 보여주는 상처 자국이 있는 것 같다…. 오른쪽 어깨에는 매우 무거운 물체를 운반한 데서 생긴 듯한 심한 멍이 있다…. 목에서 장딴지까지 심하게 매질 당한 흔적이 있고 손목과 발을 관통하는 못 자국 그리고 팽창된 흉곽까지 이 모든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에 대해 묘사한 바로 그대로 말이다.” 

아무도 이 묘사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튜린의 수의에 대한 과학적 판별 작업이 40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튜린의 수의 연구 프로젝트’ 팀(영어약자로 STURP)에 의해 이루어졌다. 구성원들은 미국과 해외 각지에 흩어져 있었는데 각 지역의 연구소에서 이루어졌으며 구성원 개개인에 의해 독자적으로 수행되었다. 


 

 

 

 

 

진품임을 보여주는 증거들 

 

 

 

1. 헬러 박사의 병리학 보고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상관없이 이 이미지에는 해부학적으로 그릇된 점이 전혀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진단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진단에 적용된 병리학과 생리학 이론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으며 150년 전 중세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지식도 포함되어 있다. 

 

 

2. 사진학 분야 

 

수의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네거티브(음화)일 뿐만 아니라 3차원적인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초기  SLURP 그룹은 실제로 수의 속의 남자를 3차원으로 재생해 내었다고 한다. 수의 위의 남자의 사진을 VP-8 이미지 분석기 속에 놓으면 채찍으로 맞고 십자가형을 당한 남자의 3차원적인 이미지가 스크린 위에 분명히 나타난다. 수의가 찍은 사진의 3차원 정보는 너무나 완벽한 나머지 연구가들은 그 정보를 가지고 완벽하게 균형이 잡힌 3차원 조상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또 하나의 놀라운 발견은 사진의 이미지를 분석하는 도중에 이미지가 '광범위한 공간상의 빈도 분포’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이미지가 어떤 방법으로 천 위에 옮겨지게 되었든 간에 완전히 무작위적인 과정에 따랐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서 이미지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까지 암시한다. 그냥 불가능한 것이다. 인간의 손으로는 어떤 것을 어떻게 발라도 방향성 없이 그릴 수단은 전혀 없으니 말이다. 


 

 

3. 프라이 박사의 먼지와 화분 샘플 연구 

 

만일 수의가 14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사기품이라면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화분만이 천에서 발견될 것이다. 분석 결과 그는 58종류의 화분을 발견했는데 그중 다수는 성지와 에데사 지역인 남부 터키에서만 발견될 뿐 다른 어떤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화분 종류였다. 

 

 

 

4. 직물 자체의 문제 

 

수의를 의심하는 회의론자들은 아마천의 유형이 뚜렷한 헤링본 무늬 짜기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드문 종류였으며 유럽에서도 12세기 이후에 다 일반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스티븐슨 박사는 “ 20세기 초기에 수의에 대한 최초의 진정한 과학적 조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소르본느 대학의 이브 딜라즈 교수와 폴 비뇽 교수는 이 점에 대해 매우 포괄적인 테스트를 하였다. 수의를 크게 확대해 보면 명확한 헤링본 패턴을 구성하는 3대 2의 씨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와 똑같은 패턴은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미라의 붕대 패턴과 동일하다. 또한, 천을 짠 실은 손으로 직접 뽑아 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매우 오래된 기술이다. 서기 1200년 무렵 유럽에서는 물레가 보편화하여 있었다. 만일 수의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면 직물 자체에 그 점이 분명히 드러나 있어야 할 것이다. 


 

 

5. 천 위 얼룩의 진의

 

피로 얼룩진 수의의 실험 샘플이 연구를 위해 예일 대학으로 보내졌다. 헬러 박사와 애들러 박사는 수의 위의 얼룩이 진짜 피일 뿐만 아니라 피와 빌리루빈이 많이 포함된 혈청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빌리루빈은 황달에 걸렸거나, 혹은 가혹하게 매질을 당했을 때 분비되는 담즙 색소이다. 

한편, 저명한 병리학자 피에르 발롱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수의 위의 핏자국이 인간의 것이며 혈액형은 AB형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6. 이 수의는 예수님의 것인가?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의 법의학자 로버트 부클린 박사는 수의 위의 정보만을 이용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냈다. 

 

“이 사람은 몸무게가 약 80킬로그램에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 되는 코카서스 인종 남성이다. 상처 부위는 다음과 같다. 머리꼭대기에서 시작해 머리 뒷부분 그리고 이마에 생긴 수많은 창상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남자는 얼굴 부위를 얻어맞았고 한쪽 뺨이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의심할 바 없이 그는 검은 눈을 가지고 있다. 코끝이 벗겨졌는데 아마 넘어져서 생긴 상처일 것이다. 그리고 코의 연골이 뼈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왼쪽 손목에 상처가 하나 있으며 오른쪽 손목은 왼손에 가려 있다. 이것은 전형적인 십자가형의 상처 형태이다. 양손바닥에 못이 박히는 모양을 한 고전적인 십자가상은 틀린 것이다. 손의 뼈 구조는 너무나 연약해서 살아 있는 사람, 특히 이 정도 몸집의 남자를 지탱할 수 없다.  

양팔을 타고 핏줄기가 흘러 내려왔다. 이것은 양 손목에 상처가 났음을 의미한다. 피가 팔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을 것이다. 몸의 앞쪽과 뒤쪽에 채찍질 자국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있다. 역사가들은 로마인들이 플라그룸이라 부르는 채찍을 사용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채찍에는 두세 개의 가죽끈이 달려 있으며 가죽끈 끝에는 조그만 아령처럼 생긴 금속 혹은 뼛조각이 매달려 있었다. 여기에서(수의사진에서) 로마식 플라그룸의 가죽끈과 금속 끝 부분이 시체의 앞면과 뒷면에 생긴 채찍질 자국에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희생자는 두 사람에 의해 양쪽으로부터 채찍을 맞았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키가 컸다. 양 어깨에는 혹과 찰과상이 있는데 그것은 남자가 죽기 수 시간 전에 무언가 무겁고 딱딱한 것을 어깨에 메고 운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른쪽 옆구리에는 길고 좁은 칼날이 위쪽 방향으로 찌르고 들어와 허파를 통과해 심장에 이르기까지 흉강을 관통하고 있다. 이것은 사후에 일어난 일인데 적혈구 세포 성분과 깨끗한 혈청이 문제의 상처 부위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나중에 시체가 천 위에 수평으로 눕혀진 후 피가 옆구리의 상처에서 뚝뚝 떨어져 허리의 잘록한 등 쪽 부분을 따라 고였다. 다리가 골절되었다는 증거는 없다. 한쪽 무릎에 찰과상이 있는데 긁힌 코끝이 그랬듯이 넘어져서 생긴 것이다. 심하게 매질 당한 이 남자가 십자가 형을 받고 심폐 기능 장애로 죽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 


피르포 카 박사는 말한다. “ 검시관의 보고서는 로마인들이 예수를 매질한 부분과 관련된 성서의 모든 설명과 일치한다. 가시 면류관을 썼던 것, 십자가를 짊어져서 생긴 찰과상, 십자가형을 당하러 가는 길에 자갈길에 쓰러져 생긴 찰과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 병사가 예수가 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오른쪽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생긴 상처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성서를 통해 알고 있는 모든 정보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또 다른 역사의 증거가 있다. 우리는 십자가형을 당한 희생자는 체중이 허파를 압박하여 터지려 할 때 질식해서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필연적인 결과에서 벗어나려고 희생자는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발에 박힌 못을 눌러 몸을 위로 솟구치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순간적인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또한 재빨리 공기를 한 모금 들이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로마 병사들은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 희생자의 다리를 미리 부러뜨렸다. 오늘날까지 발견된 십자가형의 희생자들은 모두 양쪽 다리뼈가 부서져 있었다. 물론 성경에는 예수의 어떤 뼈도 부서지지 않았노라고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7. 방사성 동의 원소 C14 테스트에 대한 논란 

 

1988년 튜린 당국이 인가하고 대영 박물관이 감독하는 3개의 독자적인 연구소가 방사선 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 측정 분석에 참여하게 되었다. 결과는 방사성 탄소의 연대가 서기 1260년에서 1340년 사이로 추정되어 예수의 수의라고 하기에는 약 1300년의 시차가 존재하여 수의는 가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결론은 많은 논쟁을 일으켰다.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방사성 동위 원소에 의한 연대 측정은 정밀한 것과 거리가 멀다. 가장 최근에 죽은 연체동물도 3천 년 전에 죽었다고 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 센털 소나무조차 연령이 2천 년 내지 3천 년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연대측정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여겨질 정도이다. 

 

2)   방사선 동위원소 테스트의 대상이 되는 물체에 외부에서 가할 수 있는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물리 화학을 연구하는 코우츠네초프 박사는 “튜린의 수의가 1532년에 일어난 화재 때 거의 타버릴 뻔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일산화탄소와 이산화탄소가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었던 화재 당시의 상황을 모의실험해 본 결과 아마천이 주위의 탄소가 풍부한 공기로부터 C14를 40퍼센트까지 더 많이 흡수함을 알아냈다. 이는 동위원소교환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1988년 연대측정에 참여한 연구소들이 화재가 미쳤을 변화를 밝히는 유사실험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변수를 고려하여 다시 계산하면 튜린의 수의가 1900년 이상이나 기원전 1세기부터 있었던 물건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3)   스티븐슨 박사는 당시 연대측정이 문제점을 발견했다. 측정에 참여한 연구소에 모두 3개의 샘플이 주어졌고 그중 하나가 이미 기원전 3천 년 전으로 알려진 미라 천조각이 있었다. 이 천조각에 대한 결과는 기원전 3440년부터 기원전 4517년까지 다양했다. 분산오차가 무려 1천 년이나 된다. 다른 두 샘플에 있어서도 오차 범위는 439년에서 1500년까지였다. 

 

 

 

 

 

 

결론

 

스카본 박사는 말하기를 “만일 회의론자들이 주장하듯 튜린의 수의가 중세의 사기품이라면 그것은 의학과 해부학부터 사진학, 화학 그리고 회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과 과학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한 믿어지지 않는 천재의 작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현미경, 분광기, 사진, 그리고 우주 시대의 모든 테크놀러지의 발견을 예견한 그런 천재 말이다.” 

지금까지 튜린의 수의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광범위하고 객관적인 과학적 테스트들은 진품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의 수의일까? 

마지막 판결이 이루어져야 할 대상은 이 천 위의 이미지이다. 어떻게 이것이 천위에 찍혀 2천 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눈으로 볼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것일까? 

 

원자핵 공학자 도널드 린은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어떤 공정 과정이 그 대답일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1978년에 수의를 조사했던 과학자 팀은 시체가 수의와 접촉했을 가장 긴 시간이 24시간에서 36시간이었다고 계산했다. 그런 다음 겨우 몇백만 분의 1초라는 시간 동안 수의의 맨 윗부분 섬유에만 영향을 끼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났다. 이미지를 형성하는 미지의 에너지라는 개념은 이미지가 철저하게 상하 방향으로만 형성되어 있으며 확산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무척 의미심장하다. 몸 양옆이나 머리꼭대기 부위는 전혀 각인되지 않았다. 따라서 더 확실하고 진보한 증거가 나타나기까지 우리가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이미지를 만든 힘이 초자연적이라는 것뿐이다.” 

 

 

 

 

 

출처 : 충격의 고대 문명, 찰스 셀리어 지음, 한뜻 출판사 1997  

 

 

 

 

 

 

 

 

 

 

 

 

 

 

 

 

 

 

 

 

 

 G. U. Faure (1845 - 1924) / Requiem in D minor, Op.48

 

 

 

 

 

 

"나의 레퀴엠은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되어 왔다.

오히려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리었다.

내가 죽음에 대해서 느낀 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인 것이다."

 

                               Gabriel Faure

 

 

 

 

 

 

 

 

 

 

          

 

G. U. Faure / Requiem in D minor, Op.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