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na H - The Fan III
함께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다고 아주 버리지도 않은 채
머리 한 귀퉁이
노랗게 통행금지 구역을 만들어
각자의 그 안에 서로를 가두고
오작교도 없는
견우, 직녀로 사랑을 했다.
까마귀는 없었다.
그랬었다. 그렇게, 너와 나
서로 다른 곳을 보며 마주하지 않은 채
각기 혼자서만 불이 되어 타오르는
그런 사랑을 했다.
발등을 찍어 걸을 수 없었고
눈을 찔러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생각만으로 서로 더듬거리며
치열, 치열, 치열하게 사랑을 했다.
칼을 갈듯 일상을 갈아
뾰족해진 어금니로
허상에 걸려 있는 서로 관념만
꼭꼭 야물게 씹어대며 사랑을 했다.
눈물로 살 찌워간 시간을
게우지 못해 오물오물
조물조물 군화를 씹듯이
만만치 않게 질긴 사랑을 했다.
한 번씩 쏟아져 내리는
격정의 소나기에
허파와 간이 달구어진 프라이팬에서
숨가쁜 뒤집기를 해댈 때에도
각자의 통증에 지레 질려
근접도 못하면서
피가 머리로, 머리로만 오그라져서
서로가 서로에게
밧줄을 목에 걸어주는
그런 사랑을 했다.
교수형에도 살아남은 금·치·산·자.
생전 처음 일심동체로, 합심단결로
허옇게, 허옇게
함께 재를 만들어야 하는
소화기 같은 사랑을 했다.
생각으로 다 산화한 사랑
마음으로 다 닳아진 사랑
그런 사랑을 했다.
지겨워서 더는 지겨워
그럼에도, 서로 내치지도 못하는
그런 엿 같은
우리는, 엿 같은 사랑을 했다.
우리는 엿 같은 사랑을 했다 2003-04-22
Celine Dion - Seduces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