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ki Okuzaki (Japan)
죽음에 이르는 계절
팔뚝 위를 눌러 희미하게 돋는 실핏줄에 입 맞춘다. 감사한다, 펄펄 뛰는 피톨들도 가져보지 못하고 이제 立春. 산책길의 태양은 헐렁한 양말처럼 자꾸 발뒷꿈치로 벗겨져 내리고 붉은 잇몸을 보이며 어린 연인이 웃는다. 그날은 군대 가서 죽은 사촌형이 내 뺨을 쳤고 물 빠진 셔츠 얼룩을 닮은 구름이 빨래줄 위를 평화롭게 걸어갔다. 마지막 인과라 생각하며 문 열어두었던 붉은 봄날. 감사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권, 5~6세기 낙동강 유역과 한강 유역 근처에 개미떼들이 커다란 구멍을 슬어놓은 봄날. 골목의 버려진 상자마다 바람의 손가락들이 채워진다. 화장실에 앉은 여자들이 노란 열매를 먹고 노란 빛으로, 푸른 알약을 먹고 푸른 빛으로 변하는 리트머스페이퍼였던 봄날. 연인의 목 안에서 바람이 방부제처럼 녹아갔다. 감사한다, 인간이라는 짐짝. 짐짝이 점점 무거워질 때 바람의 거짓말이 푸석푸석 아름다워져 간다. 사람들의 발목에서 넓고 가벼운 날개를 꺼내던 마술의 立春. 감사한다, 맑은 정오에 구릉을 지나던 객차와 화차 사이에 어린 아이가 끼어 죽은 날.
죽음의 집
늘이 녹물처럼 붉게 일었다. 모든 기억이 한 개의 덩어리였어. 새들이 신중하게 생명 以前으로 날아간다. 나는 茶器店에서 기다리는 애인을 데리러 슬리퍼를 끌고 자취방을 나와 좁은 골목 낮은 담벽을 걸었다. 벽지는 썩고 벽은 자꾸 물을 품고 달관한 듯 세상 쪽으로 기울었다. 그 벽 한구석에 나는 달력 대신 뭉크의 판화 「죽음의 집」을 붙여놓았다. 창 밖의 비극적 세계관이지 않은가, 죽은 사람을 흰 천으로 덮어놓고 여자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끌칼이 지나간 자리로 매섭게 파인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되도록 자세하게 어둠과 대추나무와 이름 없는 마룻바닥들에 대해 말하려고 애썼다. 아니, 나는 바닷가로 가서 뜨거운 모래 위에 수많은 바다거북의 알을 낳고 행복하게 죽어가고 싶었다.
조 연호
Keiko Matsui / Across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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