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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글 나들이

노 춘기 / 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by 알려하지마 2011. 5. 22.

 

 

 

 

 

 

Robert Ivanovich Sturua  (Georgia, 1916-198?)  /  Elene,  1960

 

 

 

 

 

 

 

 

 

 

 

노 춘기 / 이 버튼을 누르지 마시오

 

 

 

네가 입술을 닫기 직전에
혀가 살짝 입천장을 향하는

순간이 있다. 상상이 그 입술 안쪽으로 쏟아지는
그런 시간은 짧다
기억이 없다
이 빈 방에, 내가 누를 수 있는 건
방문을 잠그는 버튼밖에 없다
몸을 일으켜 그 버튼을 누른 후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몸을 눕히고 그 입술 너머에서
있지도 않은 기억을 찾아 헤매는 동안
무수히 닫히는 문들을 본다
내가 몸을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 방 안으로 쏟아지는
상상들, 나는 그런 기억을 가진 적이 없다
너에게 단 한번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방 안에서 나는 종일토록 동어반복이다
버튼을 누르거나 방 밖으로 나갈 때까지
어떤 경이도 없이 이 방에 불이 켜질 때까지
밤이 오고 다른 밤이 오고 다른 밤이 오고
방 안에 낯선 사람들이 빠르게 가득 찬다
초대하지 않은 기억들의 소란한 파티
몸을 일으키지 않고, 버튼을 누르지 않는 동안
내도록 방이 어둡다
그 입술 너머에 네가 없는 것처럼

 

 

 

 

 

 

 

 

 

 

 

 

 

 

 

 

 

 

          

 

Eric Tingstad & Nancy Rumbel - Aria